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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타오에
    카테고리 없음 2024. 6. 3. 14:35

     

     그들은 종종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자기는 죽는다면 어디에서 죽고 싶어? 아스타리온이 물었다. 글쎄요, 일단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면 좋겠네요. 죽음이 가까워진 걸 느끼면, 마지막 힘을 짜내 당신의 손을 잡고 그곳에 올라서, 숨을 고르며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달을 바라보고―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면 좋겠어요. 오에가 답했다.

     “오, 낭만적인걸, 달링... 햇빛이 보고 싶지는 않아? 달빛도 좋지만, 말이야.”
     “흠, 글쎄요. 햇빛도 좋지만,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손을 잡고 있다면 좋겠는걸요.”
     “자기야, 나라고 해서 다를 거라 생각하지 마. 나도 마지막 순간에는 자기의 손을 잡은 채로 죽고 싶어. 그러니 자기에게 죽음의 순간이 오면,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일출을 보러 가자. 응?”

     오에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살아야지요. 아스타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에의 주름 가득한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뭐, 벌써 죽음을 이야기하기엔 조금 이르지 않나요? 이래 보여도 아직 팔팔하다고요. 아스타리온은 대답 대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애매하게 끝났다.





     “어우 불편해... 자기는 그렇게 꽁꽁 안 싸매도 괜찮지 않아?”
     “하하, 커플 복장 같고 좋죠, 뭐.”

     진눈깨비가 내리는 밤, 그들은 또다시 방랑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방랑과 달리 목적이 있었다. 오에는 자기가 죽은 뒤에도 아스타리온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터를 찾고자 나섰고, 아스타리온은 늘 그렇듯 그런 오에를 따라나섰다. 그러니까, 이번이 그들의 마지막 방랑이었다. 마지막이라든지, 끝이라든지, 그런 말이 오간 적은 없었지만 그들 모두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말로 꺼내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가령 노화라든지, 그런 것들은 꼭 어느 순간 성큼 다가와서 사람을 놀라게 하곤 한다. 아스타리온은 어느 날, 오에의 얼굴에 주름이 생각보다 많음을 깨달았다. 오에의 얼굴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스타리온이 모를 리가 없었다. 얼굴에 있는 작은 점 하나, 잔주름 하나까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늙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언제 이렇게 늙었지, 하고 어느 순간 깜짝 놀라게 되는.

     “달링, 어째 해가 갈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데?”
     “늙으면 근육도 빠지기 마련이죠.”
     “좋은걸! 조금만 더 가벼워지면 날아갈 수도 있겠네. 새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니는 거, 자기의 오랜 꿈 아니었어?”

     그러나 그들 사이 무언의 약속―시간의 흐름에 울적해하지 말 것―을 통해, 아스타리온은 그 모든 변화를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오에는 늘 그렇듯 담담했다. 마음에 아무것도 담아두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다 괜찮아지거든요. 세상 모든 일에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예요. 자, 눈 감고 명상. 아스타리온? 나 그만 쳐다보고요. 눈 감으래도요.

     그 말대로 노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늙어가는 오에의 변화를 관찰하는 건 제법 재미도 있었다.

     “여기는 어때요? 시장도 가깝고. 경치도 좋고...”
     “난 좋아, 자기야. 내가 자기 눈을 못 믿으면 누굴 믿겠어?”

     오에가 고른 터는 훌륭했다. 더 손볼 곳이 없을 만큼.





     사실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훌륭한 터라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마음에 들라는 법은 없지.

     오에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없었다. 아줌마 얼굴에 주름 자글자글해지는 거 보는 게 뭐가 재미있겠어. 오, 달링...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빙하기가 오더라도 그 많은 게 다 얼어 죽지는 않을걸.

     변화는 유쾌하지 않았다. 오에의 담담함에는 심술만 났다. 나는 계속 살아가리라. 아니면 어찌하리?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진절머리 나고 세상은 아름다우니까. 그렇게 계속 또 방랑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 방랑하는 영혼의 영원한 정착지도 찾을 수 있겠지― 자기야, 자기야.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 내가 달링의 영원한 종착지라면, 나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데?

     여기는 어때요? 시장도 가깝고. 경치도 좋고― 사실 끝까지 무슨 터든 마음에 안 든다며 심술이나 왕창 부리고 싶었다. 입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작 그만큼 걸었는데도 오에가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주름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너무 잘 보여서― 난 좋아, 자기야.

     언젠가 죽는다면, 나는 꼭 자기가 좋아하는 석양 아래에서 죽을 테다. 말리지 마, 자기야.

     침대에 누운 오에는 떨리는 손을 들어 아스타리온의 뺨을 어루만졌다. 아스타리온이 코웃음 쳤다. 얼씨구, 아줌마가. 이젠 말릴 힘도 없으면서 잔소리하고는... 그래,

     알겠어.

     알겠다고, 자기야.





     해가 질 무렵, 그들은 또다시 방랑길에 올랐다. 아스타리온은 짐을 꾸렸고, 오에는 유골함에 담긴 채로 얌전히 기다렸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방랑과 달리 목적이 있었다. 아스타리온은 오에가 고른 터보다 더 멋진 곳을 찾고자 나섰고, 오에는 그런 아스타리온을 따라나섰다. 마지막 방랑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몇 년쯤 더 돌아다닐지도. 어쩌면 영원히 돌아다닐 수도 있고.

     “앞이 보이긴 해? 웃기네. 이렇게까지 꽁꽁 싸매놓고.”

     하긴 불편할 건 없겠지. 불편한 건 나고. 하여튼 힘든 건 나만 다 시켜, 이 아줌마는. 아스타리온이 투덜거리며 두 사람 몫의 짐을 챙겼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눈을 꾹 감았다 뜨자 훅 불어오는 바람에 눈이 시려왔다. 

     “날아가고 싶은 경치를 발견하면 말해, 자기야.”

     새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니는 건 자기의 오랜 꿈이었잖아. 아스타리온은 걸음을 옮겼다. 언제나처럼 목적지는 없이. 그게 방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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