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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시클 파이널
    시클 2024. 3. 17. 12:58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본 것은 조그만 구체였습니다.

     저― 멀리 하늘에 떠오른 구체는 세상으로 차가운 빛을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무작정 그리 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무심코, 작고 꿈틀거리는 생명을 밟아 짓이겨버린 모양이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그 작은 생명의 눈으로 그 구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눈으로 보는 그 구체는 너무 아름다워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더 큰 생명을 탐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더 큰 생명을 잡아먹을 때마다 그 생명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다가, 마침내는 두 발로 걷는 동물을 잡아먹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지금껏 잡아먹은 모든 생명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미, 쥐, 토끼, 여우, 호랑이... 인간.
     저 아름다운 구체의 이름은 달이라는 것도,
     세간에서는 저와 같은 존재를 괴물이라 부른다는 것도,
     그리고 또 알게 된 것이― 과거라는 시험의 해답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잡아먹은 그 인간이 과거시험과 관련이 있는 관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 세상의 지식을 알고 나니 세상에 정착하기는 쉬웠습니다. 비록, 미천한 몸으로 홀로 살아가기엔 매서운 곳이었으나... 그런 무정함조차도 배워가며, 저는 비로소 괴물이 아닌 인간이 되어간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어찌 그런 무정함으로만 사람을 설명할 수 있으리오.
     저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듣자 하니, 사랑은 사람을 완벽하게 만든다지요. 본질은 괴물일지어도, 혼인을 하면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을 알게 되면 그때야말로 겉껍데기뿐만이 아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과거시험의 정답을 빌미로 당신의 마음을 사려 한 것은 사죄드리겠습니다. 미천한 자가 아는 것이라곤 그뿐이어서 다른 것으로는 거래할 수 없었습니다. 

     그대는 제게 사랑을 알려주셨지요.
     너무, 너무 잘 알려주셔서, 차마 더는 그대를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대에게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깊은 죄악감 속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대를 평생 붙잡고 싶은 마음과 이만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백 번을 싸웠습니다.

     어느 쪽이 이겨야만 하는지는 그대도 알고 계시겠지요.

     약속해 주시렵니까.
     미천한 이 몸을 잊고 그대의 삶을 살아주시기로.
     저는 달빛 속에서 태어난 몸. 무언가를 잡아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비천한 몸부림은 이제 그만두고 무無로 돌아가렵니다.

     

     




     ...무엇 하시는 겁니까?
     그만하시지요. 피가 납니다... 어서 내려가서 치료하셔야겠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왜 제게 주시는 것입니까?

     괴물이라도 앞은 제대로 보일 게 아닙니까? 손가락입니다. 안 드실 거면 내다 버리겠습니다. 내가 열 손가락 다 뜯어다 버리는 꼴이 보고 싶지 않다면 잠자코 받아먹으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이대로 떠나심은, 내 그대를 평생토록 용서하지 않으리다. 하, 양반처럼 점잖게 말하려니 답답해 죽겠네. ...안 먹을 겁니까? 그럼...

     ...알았으니 진정하시지요. 이 미천한 자의 이야기 어디가 그대를 그렇게 화나게 하셨답니까?

     그 미천하단 소리도 한 번만 더 하면 진짜 미천한 게 뭔지 보여드리는 수가 있습니다.
     안 갈 겁니까? 아니면 손가락 하나로는 모자랍니까? 그럼...

     충분하니까 제발 진정하시지요. 알겠습니다, 그대를 따라 내려가겠습니다.

     

    *

     


     “클로에, 이 그림은 뭐예요? 나랑 닮은 것 같은데... 이것도 당신이?”
     “네. 오래 살면서 할 일이라고 해봤자 이런저런 재주 익히는 것밖에 없으니까요.”
     “왜 사진을 안 찍고... 아, 그때는 사진이 없었겠구나. 그래서 그린 거예요?”
     “그렇죠. 그거 그리느라고 좀 가만히 있게 했더니 당신이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전생의 나도 참을성이 딱히 좋지는 않았나 봐요?”
     “지금보다 더하지는 않죠, 아무래도.”
     “...그래서 이건 대충 몇 년 전인 거예요?”
     “321년 전이요. 그때는 가을이었지요.”
     “그런 걸 다 기억하는 것도 참... 내가 환생할 때마다 매번 찾아오는 것도 그렇고, 다 어떻게 하는 건지 진짜 소름 끼쳐 죽겠다니까요.”
     “좋다는 말을 굳이 그렇게 하는 건 여전한데요. 뭐...”

     “...다 찾아내는 방법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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