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
-
빌런au 디힐1차 2024. 12. 30. 20:58
...뭐, 이전 임무는 내 알 바가 아니라지만... 부디 이번 임무에는 그런 돌발 행동은 없었으면 한다. “그렇게 말한 게 고작 어제 일이야, 힐다.” 디엔이 말했다.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말끝에는 가벼운 한숨이 묻어나 있었다. “네 입장에서야 갑작스러운 배신으로 보이겠지만, 난 꽤 오래전부터 이렇게 할 날을 꿈꿔 왔어. 그게 어쩌다 보니 오늘이 된 것뿐이지!”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최적의 타이밍. 힐다로서는 지금 조직을 떠나지 않으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럼 그렇게 오랫동안 눈치를 못 챈 내 탓이군.” 디엔이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힐다는 디엔의 머릿속에서 어떤 결론이 난 순간을, 그의 눈동자를 통해 포착했다. “디엔.” 힐다가 전에 없이 부드러운 투..
-
디힐카지노1차 2024. 10. 7. 16:42
가을을 호흡기로 느끼기란 어렵지 않다. 희고 깨끗한 구름 몇 점 정도가 평화롭게 떠 있는 날, 시간은 오전 7~8시경이 좋겠다. 실외로 갓 나온 사람들은 그날따라 어쩐지 숨을 크게 들이켜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8월이 다 가기 전까지는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생각에,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본능에 따른다. 그러면 코로 훅 들어오는 상쾌함, 그것을 사람들은 흔히 가을 냄새라고 부른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말로 정의할 수도 없으면서. 아무튼, 그런 날씨가 아니었더라면, 디엔이 답답한 정장 차림을 30분 이상 참아주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힐다는 사람을 너그럽게 만드는 이 마법 같은 날씨에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왜?” 그래도 날씨가 상쇄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사람을 불편한 차림..
-
해포에유1차 2024. 3. 12. 16:32
연성에 등장하는 용어 짤막 사전오러: 해포세계 히어로녹턴앨리: 해포세계 뒷골목패트로누스: 디멘터라고 그거 물리치는 고등 마법. 각자 다른 동물 형태를 띠며 간단히 소통도 가능 - “어떻게 입으라고?” “내가~ 죽음을 먹는 자가 되었다~ 하는 마음으로.” 디엔은 눈을 굴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온통 새까만 색으로 차려입은 힐다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실크 드레스에, 검은색 망토와 검은색 부츠까지. 심지어 간단한 마법으로 머리카락까지 검은색으로 바꾼 힐다의 모습은 병원 같은 곳에라도 들어가면 사람 여럿 놀라게 할 것처럼 보였다. 디엔이 자기가 가진 것 중 최대한 어두운 색 옷을 골라잡으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니까 왜?” “가보면 알아~” 힐다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건성으로 ..
-
루프물1차 2024. 2. 17. 17:22
「이게 대체 몇 번째 루프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 만한 점은, 이제는 루프가 실행되는 조건을 안다는 점이다. 비록 이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흘렀지만, 조건을 안다면 이제는 막을 수 있다.」 「루프 조건은 힐다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여러 번의 관찰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힐다가 담배를 피우고 나서 최소 반나절, 길게는 사흘이 지나면 이 세계는 2월 17일로 돌아간다. 기간이 좀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그 모든 루프 속에서 공통점은 힐다의 흡연뿐이었다.」 「되돌아간 세상에서는 모두가 루프 이전의 기억을 잃는다. 나조차도 2월 17일 아침에 눈을 뜨면 어렴풋이 또 되돌아왔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그전까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아무튼, 핵심은 루프를 인..
-
빌런au 그 이후1차 2024. 1. 29. 20:43
“안녕~ 오랜만이네. 내가 그동안 좀 바빴거든. 새로운 집단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겠어?” “......” “오, 꼴이 말이 아니네... 어디 보자, 배고프진 않아? 한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걸로 아는데.” “......” “...자살 시도를 했다고 들었어.” “......” “왜 그랬어?” “사실 네가 왜 그랬는진 알아. 임무에 실패한 조직원은 그 자리에서 자결하라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딴 헛소리 나는 신경도 안 쓰지만, 우리 충직한 개 씨는 의견이 다르잖아?” “......” “상부에서는 이제 네 목의 폭탄을 터뜨리는 걸 진지하게 고려 중이야. 이 누님이 사정사정해서 겨우 며칠의 유예 기간을 얻어 왔다고. 며칠이 지나도 이 상태가 지속되면, 넌 죽을 거야. 내가 기껏 살려서..
-
빌런au1차 2024. 1. 13. 20:30
골목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들뜬 듯 활기찬 목소리와 그에 대비되는 진지한 목소리가 좁은 공간을 소리로 채우며 묘한 조화를 만들어낸다. 얼핏 들으면 단란한 대화라고도 할 수 있을 잔잔한 소음. 말소리와 그 사이사이 공백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기분 좋은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가르며, 온화한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창이 쉭― 소리를 내며 거세게 날아든다. 진지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의 목을 뚫고 그대로 벽에 처박힌 창이 벽에 꽂힌 반동으로 옅은 진동음을 흩뿌린다. 그 고요함과 어울리지 않게도, 남자의 목에서는 피가 역류하고 숨이 꺼져가는 불쾌한 소음이 흘러나와 좁은 골목에 울려 퍼진다. 그럼에도 이 공간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 덕분인지. 힐다는 짐짓 아쉬운 체를 하며 ..
-
새1차 2023. 12. 27. 17:14
그 의문이 처음 제기된 것은 아이스크림 내기 도중이었다. “그 새는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 거야?” 힐다가 여유롭게 팔짱을 낀 채로 책상 위의 난장판을 관전하며 말했다. 디엔은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하긴 내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으니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힐다가 살려낸 종이학과 디엔이 소환한 새를 싸움 붙여서 진 쪽이 아이스크림을 산다는, 아주 간단한 내기였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회차를 거듭할수록 자극성이 심해지면서 처음의 심심함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었다. 제13차 내기까지 온 시점에서 힐다는 하드보드지를 거쳐 택배박스로 종이학을 접었고, 디엔은 점점 더 전투적인 표정을 한 새를 만들어냈다. 크기가 은근슬쩍 커지고 있는 건 덤이었다. “글쎄, 실험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