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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블파 오프레커미션 2023. 1. 29. 23:46
블루파이가 자신의 발령 소식을 들은 건 이상하게도 시나몬을 통해서였다. 마법사들의 도시 팀 배우들에게 미리 다 말해놓고는 기념 파티 계획을 세운 것도 시나몬이었고, 블루파이는 말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어색한 이들에게조차 동네방네 다 소문을 내놓은 것도 시나몬이었다. 아마 그쪽에서도 대체 블루파이가 누구길래 그렇게 난리냐는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어디 갈 때마다 축하한다는 말을 듣게 된 블루파이는 한동안 제법 살기를 띠고 시나몬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그 소식은 사실로 밝혀졌으나, 블루파이는 여전히 시나몬에게 조금 화가 나 있었다. 최근 시나몬과 잠깐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그는 블루파이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대뜸 이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도망쳐버린 것이다. “그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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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커미션 2023. 1. 19. 23:18
*주의: 고어 묘사 정적을 깨지 않을 만큼 고요하면서도 걸음마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발소리가. “오.” 그가 여기 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 듯 짧고 건조한 감탄사. 하지만 늘리거나 과장하지 않은 그 한 음절에도 꽉꽉 눌러 담은 비꼼의 낌새가 스며들어 있다. 일정한 속도로 점점 다가오던 발소리는 그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약 다섯 걸음 떨어진 지점까지 와서 멎는다. 클로에다. 시온은 어둠 속에서 흐릿한 실루엣만 보고도 그녀를 쉽게 알아본다. 그리고 그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였는지. “당신은 왜 여기에 있죠?” 왜, 라는 음절에 힘을 준 말투가 방금의 감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히 묻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은 질문이지만, 그 속뜻을 해석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 당장 꺼지라는 뜻일까? 아니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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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커미션 2023. 1. 12. 23:45
1 처음 만났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가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전한 설렘 따위는 없었지만, 그는 이 특별한 인연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전날 밤, 그는 자기 전에 담배 피우는 것도 잊고 클로에의 편지를 들여다보며 이 편지지에 손수 글씨를 적어 넣는 클로에의 모습을 상상했다. 오랜만에 죽음의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처음 만난 클로에의 첫인상은 그 희망을 무참히 부숴놓았다. 시온은 만나서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한 고민만 했을 뿐, 차마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상황까지는 대비하지 않았다. 생명의 온기라고는 한 톨도 없는 대신에 눈이 시려올 만큼 강한 한기가 느껴지는 사람.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거지? 그는 한 박자 늦게 표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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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커미션 2023. 1. 4. 23:51
시온은 자기가 생각해도 등신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 사무소 문을 열까 말까 하는 문제였다. 사는 데 하나 있는 수입원을 제대로 굴릴 생각이 안 드는 걸 보니 부자 체질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는 고민하다가 느지막하게 문을 열었고, 얼마 안 가 오늘의 첫 손님들이 들어왔다. 젊은 부부 혹은 연인, 뭐 그런 관계인 사람들 같았으나 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그저 사람이 둘이니 느껴지는 불쾌감도 두 배일 뿐이었다. 내와야 하는 차도 두 배일 테고. 그는 기계적으로 손님 대접용 차를 우려냈다. 우리는 동안에는 찻잔을 뚫어져라 노려봄으로써 먹고 서둘러 꺼지라는 마음을 듬뿍 담았다. “...그래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구구절절한 사연 끝에 여자 쪽이 말했다. 보통 의뢰하러 온 사람들은 ‘도와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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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커미션 2022. 6. 24. 19:32
B타입 커미션 작업물 *주의: 식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팔 다쳤어요?” “빨리도 보셨네. 이젠 기억도 안 나죠? 당신이 이렇게 만든 건데.” “제가요? 그런 기억은 없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이 지경이던데요.” “...미안해요. 오늘은 그냥 갈래요?” “이 시간에요? 됐어요. 깨무는 것만 좀 조심해줄래요? 이런 것까지 애정 표현의 하나로 이해하기엔 내 마음이 그렇게 넓지가 않아서.” 시온은 다만 말을 싸늘하게 받았을 뿐, 클로에를 밀어내거나 싫은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경계가 풀려서 그렇겠거니 했지만, 살과 살이 닿는 느낌만 나도 질색을 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만히 있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지금도 딱히 좋은 건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