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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
    커미션 2022. 6. 24. 19:32

     

    B타입 커미션 작업물

     

    *주의: 식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팔 다쳤어요?”

     “빨리도 보셨네. 이젠 기억도 안 나죠? 당신이 이렇게 만든 건데.”

     “제가요? 그런 기억은 없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이 지경이던데요.”

     “...미안해요. 오늘은 그냥 갈래요?”

     “이 시간에요? 됐어요. 깨무는 것만 좀 조심해줄래요? 이런 것까지 애정 표현의 하나로 이해하기엔 내 마음이 그렇게 넓지가 않아서.”

     

     시온은 다만 말을 싸늘하게 받았을 뿐, 클로에를 밀어내거나 싫은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경계가 풀려서 그렇겠거니 했지만, 살과 살이 닿는 느낌만 나도 질색을 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만히 있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지금도 딱히 좋은 건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 나를 지켜주고, 나는 당신에게 많이 의지하니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거죠.”

     

     당신마저 방심해버리면 안 될 텐데. 그 말을 듣자마자 클로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아마도 그는 몰랐겠지만, 그녀의 자제력은 의도치 않은 사고로 ‘맛’을 볼 때마다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었다. 분명히 멈춰야 하는 시점이 있는 관계였고, 어쩌면 벌써 그 임계점을 넘었을지도 몰랐다. 단지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곁을 떠나지 못했을 뿐이다. 하루만, 딱 하루만, 그렇게 계속 미루다가.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요... 이미 둘 다 무리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게 된다. 어차피 내가 싫다고 해도 할 거면서. 그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그의 갈색 머리카락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그는 예전부터 머리카락만큼은 손을 대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담배 냄새와 피 냄새가 적당히 섞여 있는 손- 그는 눈살을 약간 찌푸렸지만, 역시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창백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실수로 그녀가 그의 혀를 거의 절단시킬 뻔한 일 이후로, 그는 웬만하면 입술은 열어주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처럼 보였다.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로 새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상상 속에서라도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은- 하지만 답지 않게도 사춘기 소녀 같은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목으로 내렸다. 몸의 모든 부위 중에서도 가장 피가 흐르는 게 잘 느껴지는. 그가 닿기를 특별히 꺼리는 부위이자,

     그녀에게는 특별히 맛있는 부위일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빨을 드러낸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온몸이 경직되는 느낌과 함께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왜 그렇게 안일했을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그게 오늘은 아닐 거라 생각했을까. 클로에, 클로, 에, 끊어지는 음절 사이로 바람 새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름을 부르는 것 정도의 신사적인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점점 굳어가는 몸과 다르게 생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연하게 날뛰었다. 반절은 후회, 반절은 원망―회사와 관리자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클로에만큼은 원망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으로 채워진 생각이 마구 뻗어나가다, 생각 끝이 마침내 주머니 속의 권총에 가 닿았다. 괴물들이 득시글대는 회사에 이런 실탄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기껏해야 내 머리통 정도밖에 못 뚫겠지... 그는 과거에 자신이 했던 발언을 곱씹으면서 간신히 손을 뻗어 총을 끄집어냈다. 조준이 어디로 되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그가 한 최후의 발악이 뭐라도 더 나은 결과를 불러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덜덜 떨리는 손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고,

     

     의식이 끊겼다.

     무엇이 더 먼저였을까?

     

     

     

     

     

     정신이 들었다.

     

     어느 순간.

     

     뭐에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그래도 아주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달콤한 식감, 익숙한 향수 향...

     

     창문을 통해 이른 아침의 햇빛이 들어왔다. 다시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피투성이가 된 손과 얼굴을 씻었다. 입안에 든 것은 그대로 삼켰다. 그랬다가 바로 구역질이 올라와 달려가서 다 토해버렸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아주 엉망이었다. 겨우 추스른 다음에 가방을 챙기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무사히 살아남아 퇴근하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게 될까. 아니면 기숙사를 신청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의미 없는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린다. 시간은 아주 여유로웠지만, 천천히 걸어갈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한 것도 없는데 숨이 차고 심장이 아팠다. 숨을 고르며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걸음을 떼다가, 몇 걸음 못 가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집에서부터 따라온 것 같은 희미한 목소리의 잔상이 말을 걸었다. 기억 안 나죠? 당신이 저지른 건데... 클로에가 대답했다. 네, 안 나네요. 그래야만 할 것 같아요.

     

     

     

     

     

    -

     

    원래는 여기까진데 일주일 동안 심심해서 히든엔딩을 추가해봤습니다

    파탄난 게 더 좋으시다면 안 읽으셔도 됩니다

     

    [기억저장소로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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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한 악몽을 꾼 기분이었다. 잠깐의 졸음에서 깬 클로에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와 같은 회사였다. 정확히 언제 출근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듯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을 즈음, 멀지 않은 곳에서 마침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시온과 눈이 마주쳤다.

     

     “당신이 왜...”

     “사람 얼굴 본 반응이 무슨... 당신이 조는 사이에 내가 안 죽어서 아쉽기라도 해요?”

     

     날 선 반응을 가볍게 무시한 클로에가 성큼성큼 다가와 시온의 팔을 확 잡아챘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멀쩡하네요. 그럼 됐어요.”

     “뭐가 된 건진 모르겠지만 좀 놓고 얘기하죠.”

     “아, 너무 세게 잡았나요?”

     “당연한 소릴... 아침부터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요?”

     

     무슨 일이었지? 클로에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난 며칠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은 없었다. 평소대로 출근해서 일했고,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잘 넘어갔다. 시온도 무사했다. 팔은 왜 확인했지? 꿈의 내용이라도 되짚어 보려고 했지만 이미 잊힌 지 오래였다. 모든 게 문제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불안하면서도 애틋한 이 관계까지도.

     

     “...많이 피곤해요?”

     

     그녀가 한참이나 대답이 없자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시온이 한층 부드러워진 어조로 물었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그제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조금 피곤하지만 괜찮아요. 당신도 무사하고.”

     “조금 맞아요? 당신이 조는 건 처음 봤는데.”

     “깨우지 그랬어요?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안 그래도 깨울까 하던 참이었어요. 이젠 괜찮죠?”

     “그럼요. 오늘 퇴근하고 일찍 자면 내일은 괜찮을 거예요. 아, 혹시 우리 집에서 하루 자고 갈래요? 오늘은 일찍 자리를 깔고 누워서 잠들 때까지 당신과 이야기나 나누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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