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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런au 디힐
    1차 2024. 12. 30. 20:58


     ...뭐, 이전 임무는 내 알 바가 아니라지만... 부디 이번 임무에는 그런 돌발 행동은 없었으면 한다.

     “그렇게 말한 게 고작 어제 일이야, 힐다.” 디엔이 말했다.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말끝에는 가벼운 한숨이 묻어나 있었다.

     “네 입장에서야 갑작스러운 배신으로 보이겠지만, 난 꽤 오래전부터 이렇게 할 날을 꿈꿔 왔어. 그게 어쩌다 보니 오늘이 된 것뿐이지!”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최적의 타이밍. 힐다로서는 지금 조직을 떠나지 않으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찾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럼 그렇게 오랫동안 눈치를 못 챈 내 탓이군.” 디엔이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힐다는 디엔의 머릿속에서 어떤 결론이 난 순간을, 그의 눈동자를 통해 포착했다.

     “디엔.” 힐다가 전에 없이 부드러운 투로 불렀다. “그냥 보내줄 수는 없겠어?”

     디엔의 등 뒤에서 그의 키와 엇비슷한 길이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안되지.”



     


     힐다의 가벼운 손짓에 따라 종이들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손을 푼다는 느낌으로 대여섯 장쯤 날려 보낸 종이가 디엔이 휘두른 창에 부딪히면서 힘을 잃고 바닥으로 나풀나풀 떨어졌다. 전에 그놈은 이 공격으로 정리했는데 말이지. 기습이라지만... 힐다가 불만스럽게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들고 있던 부채로 손바닥을 두어 번 두드리자, 땅에 떨어졌던 종이가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만, 아무래도 팀으로서 합을 자주 맞춰 봤다는 것은 곧 상대의 약점을 분석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뜻이라. 그리고 디엔은 거의 모든 조직원과 한 번씩은 팀을 이뤄 보면서 그들 한 명 한 명의 전투 시 취약점을 모조리 꿰고 있는 편이었다. 이런 비상 상황에 대비해서. 디엔의 주변으로 떨어진 종이가 그의 무릎 근처까지 올라오기도 전에, 디엔이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디엔이 너무 빠르고 갑작스럽게 접근해 오는 바람에, 힐다는 반사적으로 그의 경동맥에 단검을 꽂을 뻔했다. 임무 때마다 디엔은 늘 후방 지원을 맡았다. 능력의 특성상 전장 전체를 보는 데 유리했기에. 일단 시각 보조용 새를 만들어서 사각지대를 커버한 뒤, 시간을 들여 이능력으로 상대를 천천히 압박해 가는 것이 그의 스타일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온 디엔이 힐다의 목젖을 움켜쥐고 벽으로 밀쳤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힐다는 팔꿈치로 그의 명치를 가격했다. 디엔이 살짝 휘청였지만, 급소를 정통으로 맞고도 그 이상으로 자세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뒤에서 쏜살같이 날아온 종이 한 장이 디엔의 얼굴 바로 옆으로 날아들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고개를 돌려 피한 탓에 귀 끝만 살짝 베이고 말았다.

     “너, 날 죽일 생각이 없는 거지.” 디엔이 날카롭게 속삭였다. 샛노란 눈동자가 위협적으로 빛났다. 힐다는 별로 눈에 힘을 줄 생각도 없이 그를 느슨하게 마주 보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여전히, 힐다의 내면 어딘가에 존재하는 생존 본능은 어떤 신호도 보내지 않고 있었다. 디엔은 여전히 힐다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처음 벽으로 밀쳐질 때 잠깐을 제외하면 숨쉬기 어려운 수준으로 세게 누르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는 너는? 그 망할 새는 어디 두고 갑자기 개싸움질이지?” 힐다가 짐짓 여유로운 듯 웃었다. 실은,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긴 했다. 양측 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고 싶어 한다... 그럼 둘 중 비살상 제압에 더 유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쪽은 누구일까?

     “너야말로 내 경동맥을 눈으로 좇으면서도 칼을 꽂지 않았지. 어때, 힐다. 지금 이 행패는 모른 척해 줄 테니, 얌전히 돌아가는 건?”
     “농담이지? 네가 명백한 원칙 위반 행위를 보고도 눈 감아 주겠다고?”
     “나는 네가 제법 마음에 들거든. 너 정도면 훌륭하지, 안 그래?”

     설득하는 태도가 글러 먹었어. 힐다는 말없이 디엔을 마주 노려보았다. 같이 일할 때는 참 좋았지만, 맞서 싸우자니 영 거슬리는 점 하나― 디엔은 멍청하지 않은 편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침묵이 길어지면, 그는 힐다의 대답을 거절로 해석할 것이다.

     정답이긴 하지만. 힐다가 무릎 아래까지 오는 치맛자락을 손아귀에 조심스럽게 감아쥐었다.

     “그게 네 대답이라면, 힐다.” 디엔이 잇새로 내뱉었다. 그동안 그의 눈동자는 힐다의 눈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힐다는 마주 보고 있는 몇 분 동안 디엔이 눈을 한 번이라도 깜빡였는지 의심스러웠다.

     다음 순간, 디엔이 힐다의 목에서 손을 떼고 물러났다. 그러자, 약간 트인 힐다의 시야에 무수히 많은 흰색 창이 이쪽을 겨누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힐다의 눈이 창의 개수를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창들이 한꺼번에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렇군. 새를 만들어내는 대신 이딴 걸 준비하고 있었다니―

     “수법이 더럽잖아, 디엔!”
     “상냥하게 굴어야 하는 이유라도?”

     힐다가 치맛자락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천을 뜯어냈다. 치맛자락은 뜯겨 나오는 즉시 종이로 변해 그녀의 앞에 방벽을 만들었다. 미니스커트 정도의 길이로 짧아진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미처 못 세운 방벽 아래로 뚫고 들어온 창들이 마구 찢어놓았다. 다행히 치명상은 없었지만, 출혈이 제법 있어서 위험했다. 방벽에 막혀 부서진 창 조각들은 공중으로 떠올라 다시 방벽에 부딪혔다. 한참 힘 싸움이 이어지다가, 종이 방벽이 산산조각 남과 거의 동시에 디엔의 창 또한 모두 조각나 소멸했다.

     “...새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구만?”

     힐다가 숨을 고르며 디엔을 돌아보았다. 디엔이 만들어내는 투사체는 기본적으로, 디엔이 하나하나 다 직접 조종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대규모 공격을 하고도 과부하가 안 올 리 없었다. 실제로 여유가 있었다면 힐다가 방어에 치중하는 동안 창으로 기습했을 테고. 힐다의 추측이 정확히 맞아들어갔는지, 돌아본 디엔의 얼굴에는 이미 여러 차례 코와 입 주변을 소매로 닦아낸 듯한 핏자국이 흥건했다. 안색 또한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 못지않게 창백했다.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네 수명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지 그래...” 힐다가 목소리를 나지막하게 유지하며 말했다. 전에도 가끔 무리했을 때 디엔의 머리카락 색이 일시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본 적 있었다. 저 상태면 보통 기절까지 몇 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쪽도 그리 여유롭지 않다는 점이었다. 종이가 더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고.

     디엔이 떨리는 손으로 창을 들어 힐다를 겨누었다. 힐다가 혀를 차며 부채를 옆으로 대충 내던지고 단검을 단단히 쥐었다. 고집이 센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야...

     “그래도 정말 이런 식의 결말을 원할 줄은 몰랐네.”

     디엔의 창과 힐다의 검이 맞닿기 직전, 무릎이 푹 꺾여 무너지는 디엔의 옆구리에 단검을 찔러 넣으면서, 힐다가 중얼거렸다.





     그 사건으로부터 3년이 흐른 뒤, 초봄.

     디엔은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을 매단 채로 타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온갖 카페인 음료수 캔들이 굴러다녔다. 그는 철야가 며칠째인지 따위는 세지 않았다. 그저 회사가 거기 있으니 출근을 하고 일이 여기 있으니 할 뿐. 그래도 방해꾼만 없다면 몇 시간 내로 끝을 볼 수 있는 일들이었다.

     “오, 안녕. 네 점진적 자살의 결말을 보기 좋은 날이네.”

     생각하자마자 방해꾼이 등장했다. 힐다는 양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놀러 온 행색이었다. 디엔이 즉시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성대는 끔찍하게 쉰 목소리 외에는 내보내지 않을 것을 굳게 주장하고 있었다.

     “일용할 양식을 가져온 은인한테 그런 못된 표정이라니 무엄하다.”
     “놓고 꺼져.”
     “죽을래?”

     힐다가 디엔의 책상 위 빈 캔들을 대충 한쪽으로 밀어 치운 뒤 책상에 턱 하니 앉았다. 디엔은 노트북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로, 절대로 힐다를 쳐다보지 않았다. 힐다가 책상 위의 서류 몇 장을 들춰보더니 놀리는 것이 명백한 어조로 말했다.

     “너 그렇게 자학적으로 일한다고 해서 목걸이 빨리 풀어주는 거 아니다? 나처럼~ 내면의 선량함을 증명해야지.”
     “방금 그거 좀 웃겼는데, 이따 회식 자리에서 앵콜 한 번 해주겠어?”
     “음? 너 그거 오는 거야? 한 번을 안 오더니만.”
     “몇 년을 안 간다고 뻐겼더니, 팀장님이 빌런에서 전향한 히어로는 회식 자리에 참석하는 게 의무라고 공표해 버렸어.”
     “잘됐네~ 안 그래도 네가 하도 두문불출하는 통에 괴담의 주인공이 되기 직전이거든. 이번 기회에 다들 친해질 수 있으면 좋겠네~”

     디엔이 그제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힐다를 흘끔 올려다보고는 깊게 한숨지었다. 힐다는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씩 웃어 보였다.

     “너 계속 여기 있을 거면 나 여기서 밥 좀 먹는다? 아~ 맛있겠다!”
     “너 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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