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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은 그 자신이 상식적인 인간이라는 데서 오는 자부심을 어느 정도 가지고 살아왔다. 그때까지는. 그때라고 함은, 그가 클로에는 감히 상상도 못 할 법한 뒷세계의 루트를 통해 인육을 처음 접했을 때를 말한다. 그가 이러고 있음을 클로에가 안다면 그녀는 화를 낼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나중에 스스로 고해바칠 생각이었으니까. 그럼 클로에는 대체 무슨 젠장맞을 세계의 법칙이 당신더러 그런 짓을 하게 밀어붙였느냐고 따지겠지.
그리고 거기에 대고 그냥 당신의 입맛이 궁금해서요, 라고 대답하는 건 상당히 쪽팔린 일이 될 것이다.
“친구, 그럼 맛본 뒤에 연락 달라고. 생각보다 입맛에 잘 맞을지도 모르니까.”
시온은 귀찮음이 절절히 묻어나는 고개 끄덕임 한 번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불법 품목을 거래하는 뒷세계의 상인들은 쓸데없이 쾌활한 면이 있었다. 아마도 멀쩡한 성격이 거의 없는 뒷세계 손님들을 상대하며 익힌 그들 나름의 장사 스킬일 것이다. 시온의 눈에는 그런 무의미한 인사말이 그저 아까운 산소를 낭비하는 행위로만 보였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단합해서 입을 닥친다면 환경에 상당히 이로울 텐데.
“혹시 그게 생전에 어떤 인간이었는지도 궁금한가, 친구?” 상인이 썩 꺼지기를 계속 미루고 지껄였다.
“어떤 멍청이인지는 관심 없고, 부위가 궁금한데.” 이 말은 사실이었다. 클로에가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때 정확히 어디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지는 조금 궁금했으므로.
“목이지. 가장 인기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부위야. 아무거나라고 말했는데 이런 걸 갖고 온 데 감사하라고, 친구.” 시온은 그의 친구 소리를 대충 국악의 추임새 같은 걸로 이해했다. 상인은 계속 서글서글하게 굴면서도 눈빛에 위협을 담을 줄 아는 놈이었다. 그가 시온의 목덜미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 그쪽도 꽤 맛있어 보이는 목을 갖고 있는데. 다음에 만날 때 고기로 만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시온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좆같은 눈깔 치워, 호로새끼야.”
엿같은 새끼. 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겨 아직도 얼얼한 머리 가죽을 부여잡고 귀가했다. 적어도 오늘은 클로에가 출장 중이라서 다행이었다. 분명 또 어디서 무슨 짓을 벌이고 온 거냐고 타박하겠지. 어떤 새끼가 때렸느냐고도― 클로에는 이제 ‘새끼’라는 욕설을 습득했다.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도 불명확했다. 클로에의 두뇌는 자연 망각이라는 기능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클로에가 내일까지 출장을 나가 있기에, 시온은 오늘의 특별한 저녁을 준비할 수 있었다. 보통의 상식적인 인간이라면―물론 정말 상식 부문의 만점자라면 인육을 사 오지도 않았겠지만―이걸 어떻게든 조리해서 먹으려고 했겠지만, 그는 오늘 거기서 거기인 고기 맛을 즐기려고 이 짓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는 궁금했다. 무슨 맛이기에 클로에가 그토록 견고한 이성마저도 놓아버리고 달려들 정도인지.
클로에에 대해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 또한 일종의 소유욕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는 알지 못했다.
맛을 변형시킬까 봐 술을 마실 엄두는 못 냈지만, 대신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담배를 두 개비 피워 없애고 돌아온 시온이 용기가 사라지기 전에 냅다 생고기를 콱 씹었다.
그리고 맹렬하게 뱉어냈다. 염병 빌어먹을 엿같은 우라질―
물론 어느 정도는 이럴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순간에, 현관문이 휙 열릴 것은 정말 그가 예상한 어떤 경우의 수에도 없었다. 처음에 그는 아까 그 상인이 기어코 자기를 죽이러 오기라도 한 줄 알고 반사적으로 식칼을 뽑아 들었지만, 현관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클로에였다.
“...일이 빨리 끝나서 오늘 왔는데요.” 클로에가 시온이 가진 유일한 궁금증을 채 물어보기도 전에 신속하게 해소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시온이 클로에의 수천 가지 궁금증을 해소해 줘야만 하는, 신나는 해명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맛있던가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얼굴로, 클로에가 물었다. 시온이 잠시만요, 설명할게요―라는 말 이후로 횡설수설하며 30분간 늘어놓은 헛소리(말하는 도중에도, 그는 점점 더 바보 같아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약 3분의 침묵 끝에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클로에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3분씩이나 필요하지 않았다. 아마 시온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속으로는 상황 정리를 마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클로에는 최소 3분을, 시온을 한심해하는 데만 썼다는 뜻이다. 어쩌면 대체 뭐라고 반응해야 하는지 고민했을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자랑스러워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클로에는 무슨 난제를 앞에 두고도 1분 이상 고민하는 법이 잘 없었으니까.
“...들어올 때 못 봤어요? 다 뱉어내고 있는 거.”
“까먹었네요. 당신이 헛짓거리하는 장면을 머리에 오래 넣어두고 싶진 않았거든요.”
평소에 내가 헛짓거리하는 것만 잔뜩 기억해 놓고 두고두고 놀려먹는 게 취미면서. 시온이 중얼거렸지만, 클로에가 쏘아보자 즉시 입을 다물었다.
“...제 입맛이 궁금했다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클로에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뜨고는 덧붙였다. “무슨 젠장맞을 세계의 법칙이 당신더러 그런 짓을 하게 밀어붙인 건가요?”
이 말에 그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려는 걸 겨우 억눌러야 했다. “하루 정도 미쳤었다고 해두죠, 뭐...”
물론 그 짓을 두고 ‘미쳤다’고 표현하는 걸 허용하자면, 그는 하루가 아니라 늘 미친 상태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속에 품고 다니던 의문이었으니까. 클로에는 그의 빤한 속을 다 안다는 듯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클로에가 한숨을 쉰다는 것은 좋은 신호였다. 그러고 나면 으레, 그가 무슨 멍청한 짓을 했든 용서해 주곤 했으니까.
그날 밤, 절묘하게도 클로에의 식인 충동 폭주 주기가 돌았다. 클로에는 여느 때 그랬듯이 그의 살을 물어뜯었다. 당장은 피를 봐도 목숨에 지장이 없는 부위 위주로, 마치 아끼는 음식을 조금씩 아껴 먹는 것처럼. 그는 별생각 없이 진통제를 씹었다. 고통은 제 것이 아닌 듯 멀게만 느껴졌다. 통증은 구름 위에서 겪은 것처럼 꿈같이 아릿했다.
클로에의 이성이 돌아오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동안 시온은 무감각하게 진통제를 씹으며, 멀쩡한 팔로 보이는 대로 지혈이며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클로에를 막을 의지는 전혀 없었다. 그는 이제 클로에가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뜯어먹도록 내버려두었다. 당연하겠지만, 이성이 돌아온 클로에는 왜 그랬냐며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을 억눌러 참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이유는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 화를 내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다 언젠가는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그가 생각하기엔,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는 듯이, 클로에가 말을 이었다. “그럼 당신을 죽이고 남은 저는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뭐, 당신이라면 그것도 곧 이겨내고 완벽한 당신으로 빠르게 돌아갈 것 같은데요.” 클로에는 그를 한 대 때리고 싶은 듯해 보였다. 적어도 지금은 미안해서 때리지 못할 테니, 이때만 부려볼 수 있는 객기라고나 할까.
“이제 미안해할 때는 지났잖아요, 우리 사이에.”
마지막으로 그 말을 던지고, 그는 클로에가 ‘우리 사이’라는 단어의 복합적인 의미에 관해 그의 개인적인 견해를 캐묻기 전에 욕실로 들어갔다.
오늘의 결론: 인육은 이성을 잃은 클로에 입에나 맛있다. 끝.